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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심상치 않다. 독일 시민 5명 중 1명은 당장 이번 주말 총선이 열리면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라는 극우 정당에 표를 던지겠다고 한다. 유럽에서 극우의 출현과 활약, 득세는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지만, 아돌프 히틀러 이후 지금까지 과거사 반성을 이어온 독일에서 ‘극우의 약진’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세계를 덮친 인플레이션, 기후·에너지 위기, 최근 가속화하는 이민자 문제,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끄는 ‘신호등 연정’(사회민주당·녹색당·자유민주당)에 대한 불만을 양분 삼아 당세가 급격히 커지고 있다.
독일을 위한 대안이 창당된 것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2월 독일의 온건 보수 정당인 기독교민주연합(CDU·이하 기민련) 당원이거나 지지자였던 중년 학자들이 ‘유로화 반대’라는 기치를 앞세워 창당했다. 그해 연방 선거에서 4.7%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하원 입성(득표율 5% 이상) 기회를 놓쳤다. 이듬해 유럽의회 선거에선 득표율 7%로 독일 몫 96개 의석 중 7석을 차지했다.
당세가 급격히 커진 결정적인 계기는 2015년 ‘유럽 난민 위기’였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독일에 도착하는 모든 시리아인의 망명을 허용하겠다는 정책을 폈다. 이 정당은 이민을 ‘위협’으로 규정하며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2016년 3월 독일 동부 작센안할트주 의회 선거에서 25%라는 높은 지지율로 기민련에 이어 2위 자리를 차지했다. 2017년 9월 연방 총선에서 득표율 12.6%를 기록하며 709개 의석 중 94석을 거머쥐었다. 국가사회당(나치) 이후 극우 정당이 이만한 성과를 올린 것은 처음이었다.
2021년 총선에선 득표율이 10.3%로 떨어졌지만, 5개월 뒤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과 후폭풍을 ‘기회’로 삼았다. 독일 내 여러 여론조사로 확인된 이 정당의 전국 지지율은 20%에 달한다. 1위 기민·기사련(CDU·CSU)과의 지지율 격차를 한자릿수까지 좁혔고 숄츠 총리의 사회민주당(SPD)을 앞질렀다.
이들은 숄츠 총리의 ‘신호등 연정’이 추진하는 대부분 정책에 반대하고 있다. 대표적인 쟁점은 이민이다. 독일은 ‘이민자의 나라’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포용적 정책을 유지해왔지만, 최근 다시 난민 수가 늘며 불만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독일에 접수된 난민 신청 건수는 24만4천건으로 전년보다 47%나 많다.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튀르키예 출신이 절대다수다. 난민 수용에 적극적인 녹색당 소속 지역 정부 관계자까지도 “더 이상 이렇게 많은 이들을 돌볼 수 없다”고 할 정도다. 5월 공영방송 아에르데(ARD)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4%가 이민자 수용에 대해 이익보다는 불이익이 더 많다고 답했다.
나아가 신호등 연정의 기후·에너지 정책에 대한 대중의 회의적 정서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독일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뒤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중단하며 지난해 에너지 요금이 급등했다. 물가가 전년 대비 8.8%(지난해 10·11월)나 오르는 인플레이션도 겹쳤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유럽연합(EU) 내연기관 차량 신규 등록 금지, 신규 건물에 가스·석유 보일러 설치 금지 등에 박차를 가하자 불만을 느낀 시민이 늘었다.
1년7개월째 계속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피로감 역시 이 정당에 호재다. 시민 상당수가 독일 정부의 무기 지원에 찬성하지만, 아에르데의 3월 조사에 따르면 군사 지원이 지나치다는 의견도 40% 가까이 된다. 이 정당은 반미, 친러 성향을 나타내며 군사 지원을 중단하고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자는 논리를 편다. 나아가 “독일 산업에 해를 끼친다”는 이유로 대러 제재 해제도 주장한다.
지역별 지지세를 보면, 1990년 통일 이후 30여년이 지나는 동안 여전히 지속 중인 독일 내 갈등을 읽을 수 있다. 독일을 위한 대안은 이민 등의 문제에 더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작센, 튀링겐, 브란덴부르크주 등 동부 지역에서 인기가 높다. 이들 지역에서 이들은 사실상 ‘대중 정당’이 되어 지지율이 30%대에 달한다. 전국 평균보다 약 10%포인트 높다.
라이프치히대 연구소(EFBI)가 올해 6월 펴낸 독일 동부 지역의 극우적 태도 관련 연구를 보면 이 지역에서는 불평등과 ‘2등 시민’이라는 느낌, 민주주의에 대한 전반적인 불만이 서독에 비해 더 빈번히 나타난다. 실제로 1990년대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 많은 동독 주민들이 집단적으로 실업을 경험하고, 약 250만명의 주민이 실업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에는 동·서독 간 부와 소득 차이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시골에 해당하는 동독 지역이 이농과 고령화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는 점이 유권자 표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연구소의 마리우스 딜링 연구원은 한겨레에 “이런 구조적 차이 때문에 (동독 주민이) 뒤처졌다는 느낌을 더 받을 수 있다”며 “독일을 위한 대안은 이러한 (지위) 격하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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